< 데라우치 마사다케 >
군인 출신이었던 데라우치에겐 다방면의 조선총독 직책이 버거울 수 밖에 없었다. 그를 돕기위해 비서관으로 온 자가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1878~1967)다. 요시다는 데라우치와 함께 조선을 무참히 짓밟을 정책을 연구하는 한편 조선의 지식인들은 직접 상대하며 한 나라를 경영하는 정치적 수완을 익혔던 것으로 보인다. 패전 후 반미 성향이 없다는 이유로 총리가 될수 있었던 요시다는 1946~1953년 동안 5번의 총리직을 지내며 일본을 부흥시킨 명재상으로 불린다.
< 요시다 시게루 >
요시다는 재임기간 중에 인재 양성에 주력하여 수많은 정치인들을 길러냈는데 그 중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1899~1965)와 사토 에이사쿠(佐藤栄作 1901~1975)가 각각 일본 총리직을 지낸다.
이케다 하야토는 능력 하나는 출중한 자였는데 미소 냉전기를 절묘하게 이용해 일본의 외교적 역량을 끌어 올리고 아시아 각국에 원조무역을 통한 교묘한 전략으로 일본의 경제를 고도로 성장시켰다.
< 이케다 하야토 >
하지만 요시다 시게루 못지 않게 흉악한 놈으로 한국인이라면 절대 용서할수 없는 망언을 내뱉기도 했다.
제6차 한일회담의 예비절충이 이루어지고 있던 1월 26일, 일본 공산당 국회의원 한명이 "조선인민에 대한 이러한 비도덕적인 여러 가지에 대해서 총리는 진정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어떤지, 이 단상에서 분명히 말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질문하자 이케다 하야토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선을 병합한 이후 일본의 비행에 대해서는 나는 견문이 적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조선을 병합한 이후 일본의 비행에 대해서는 나는 견문이 적어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케다 하야토는 위 망언을 내뱉던 1963년 미쓰야 계획을 수립한다. 이 계획은 통합막료부(한국의 합동참모본부)의 한반도 분쟁 발생시 작전계획에 대한 연구를 말하는데 사실상 한반도 재침략을 위한 연구 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다.
미쓰야 연구는 기초연구1, 기초연구2, 기초연구2(별책), 기초연구3까지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었는데 언론을 통해서는 앞의 3개만 공개되어 있으면 기초연구3의 내용은 공개 되지 않았다. 총 1,400여 쪽으로 구성된 이 연구는 현재 일본 외무성 산하 평화안전보장 연구소에서 복사나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열람만 가능하다.
<極秘 미쓰야(三矢) 연구 - 쇼와38년 통합방위도상연구, 통합막료부 작성>
제 1단계 한국 군내에서 반란이 발생해서 미군이 진압을 위해 출동하고. 한편 북한도 불안정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제 2단계, 한국군내의 일부 반란에 대해서 북한 공산당 측의 지원이 이루어진다.
제 3단계, 공산군이 한국에 공격을 실시함으로써 전쟁상태가 재발한다.
제 4-6단계, 주한미군이 전투에 참여하면 주일미군기지도 자동적으로 대응하게 되므로 자위대의 미군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전쟁이 일본까지 영향을 미쳤을 경우 자위대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5단계에서 자위대 전투 병력의 한반도 상륙이 이루어진다.
제 7단계, 일본에 대해 본격적인 해상 및 상공에서의 공격(중국, 소련의 반격)이 발생했을 경우 자위대의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제 1단계 한국 군내에서 반란이 발생해서 미군이 진압을 위해 출동하고. 한편 북한도 불안정한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제 2단계, 한국군내의 일부 반란에 대해서 북한 공산당 측의 지원이 이루어진다.
제 3단계, 공산군이 한국에 공격을 실시함으로써 전쟁상태가 재발한다.
제 4-6단계, 주한미군이 전투에 참여하면 주일미군기지도 자동적으로 대응하게 되므로 자위대의 미군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전쟁이 일본까지 영향을 미쳤을 경우 자위대의 대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5단계에서 자위대 전투 병력의 한반도 상륙이 이루어진다.
제 7단계, 일본에 대해 본격적인 해상 및 상공에서의 공격(중국, 소련의 반격)이 발생했을 경우 자위대의 행동은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특히 민감한 사항이 있는데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 시 미국이 전술 핵무기를 한국에 투입하는데 앞서 일본 반입에 대한 여부가 검토 되었으며 허가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있다는 점이다.
제 7단계로 상황이 진행되기 이전에 미국에 의한 전술 핵탄두가 휴전선 일대를 공격하여, 휴전선 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되어 북한의 전면적인 남하를 막는다.
이 계획 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 또한 그저 넘어갈 수 없다. 유사시(한반도 전쟁) 일본 국내의 기본권 제한과 국가 총동원 체제 마련을 위한 새로운 법을 제정, 즉 자위대에 의한 쿠데타적 헌법질서를 창출하려는 내용이 핵심이다.
군국주의 회귀를 통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미쓰야 연구는 사토 에이사쿠가 총리로 재임하던 1965년까지 지속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일본 사회당 국회의원들이 미쓰야 연구의 실체에 대해 질문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 사토 에이사쿠 >
사토 에이사쿠는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라는 비핵 3원칙을 내새운 공로로 퇴임 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재임기간 중에도 계속되었던 미쓰야 연구를 용인했던 사토 에이사쿠는 노벨평화상의 자격이 있을까?
2002년 요시다 시게루의 뜻을 이어받은 자들이 일본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1965년 미쓰야 연구의 보고서가 유출되던 때 방위청장을 하고 있던 자는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 1904~69)로 전 일본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郎 1942~)의 아버지
현 일본 총리 아소 다로(麻生 太郎 1940~)는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자
고이즈미 이후의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 晋三 1954~)의 외숙부는 사토 에이사쿠
현 일본 총리 아소 다로(麻生 太郎 1940~)는 요시다 시게루의 외손자
2006년 독도에 측량선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된 일련의 행동들은 미쓰야 연구가 떠오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