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버 연대기

chaotic/Common | 2009. 8. 13. 20:43 | kathe
The Chronicles of Amber, 로저 젤라즈니 / 김상훈 옮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즈음에 구입했던 책이다. 1권만 구입했었다. 당시 나의 독해력이 떨어져서인지 집중을 하지 않아서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책이 말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따라가지는 못했었다. 한 남자, 우중춤함, 심리, 복잡함, 묘사, 환상... 이런류의 단편적인 이미지만 기억하였다.

2009년 또다시 한여름에 이르러 도서관에서 빌려 5권까지 완독 하였다. 내가 어떤 면에서건 성숙해서일까 어릴적과 같은 난해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실망감만 느껴질 뿐.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빌려온듯한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 코윈이 앰버와 그 그림자 속에서 벌이는 여러 사건을 다룬 이야기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의 많은 신들이 앰버의 왕족들로 대치된 듯 하고 순전히 그들의 욕망에 의해서 암중모략과 살인을 일삼는다. 젤라즈니의 필력과 상상력에 의한 뛰어난 묘사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지만 어려운 철학과 심리학, 배경지식아래 숨겨진 본질은 하찮기 그지없다. 많은 복선과 수수께끼, 그리고 여러 신화에서 빌려와 마구 뒤섞은 듯한 환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란 아랫세계의 인간 욕망에 의해 일어나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 그가 꾸미는 앰버의 세계관은 인간의 어둡고 적나라한 본성을 화려한 환상속에 숨기려는 화장술에 불과하다.

지식과 사고의 수준은 별개다. 젤라즈니는 양자역학에서 심리학, 인도철학에 이르는 방대한 지식을 가졌을지는 모르지만 그것들을 통해 말하려는 바는 모호하기 그지없다. 당시의 조류인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았는지 허무주의에 합치하는 면도 얼핏 보인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할 만한 것을 찾자면 권선징악이 유일하다.

서양 사상의 화려한 이면에는 이러한 속빈 강정과 같은 면이 있음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더욱 확증을 가지게 되었다. 철학자, 과학자와는 다른 또 다른 부류인 예술가로서 젤라즈니를 구분하겠지만 그의 문학은 통속적인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읽는이의 영혼과 접촉하지 못하는 그의 수준으로 보아 그저 글쟁이의 복잡하고 화려한 표현이 활자로 드러난 것이 앰버연대기라 평하고 싶다.

젤라즈니의 앰버 연대기는 시간때우기 용이며 무엇인가 배울것은 없으나 서양 지식인들의 사상과 내면적인 면을 엿보기에는 어느정도 도움이 되는 작품이다.

덧붙여 김상훈씨의 번역은 너무 딱딱하고 고유명사의 소리냄[각주:1]을 제대로 하지못하는 면이 보인다.



  1. tirnanog; 티어노그, 티르나노그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