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事實)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 또는 확정된 평가의 표준에 관련하여 유효한 무언가를 가리킨다.
진실(眞實)은 사실, 거짓이 아닌, 왜곡이나 은폐나 착오를 모두 배제했을 때에 밝혀지는 바를 말한다.
~ 진실은 검증 가능한 객관적 사실에 근거를 둔다. 그러나 사실 자체만으로는 진실이기에 부족하다. 사실은 학문을 하는 데 필요한 자료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들의 상관관계에 어떤 원리가 있는 것을 발견해야 비로소 학문에서 탐구하는 진실에 이른다고 할 수 있다.
-Wikipedia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2002년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위 두문장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가리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실제로 그것이 어떠하였는지를 따지면 너무도 간단히 답이 나온다. 개인의 주관이 개입할 여지는 추호도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실제로 존재하거나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사실이라고 할 수도 없다.
무인도에 폭풍이 몰려와 하늘을 날던 갈매기가 번개에 맞아 죽었다. 실제로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하자. 우리는 무인도에 갈매기가 살았는지 어쩌다 죽었는지 알 수 있는가? 같이 날던 다른 갈매기가 인지 했다 하더라도 쓸모가 없다. 오로지 인간이 경험한 일이어야만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인지하든 어쩌다 찍힌 사진에 의해 1주일 뒤에 인지하든 시간은 상관이 없다. 갈매기가 죽었다는 것을 인지한 그 순간부터 사실이 된다.
사실은 누군가의 경험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없는것과 같다.
사실이 인간의 경험에 의해 인지되어야만 존재한다면 주관적인 개인의 입장이 반영될 여지는 충분하다.
<라쇼몽1950>
전란이 난무하는 헤이안 시대, 억수같은 폭우가 쏟아지는 `라생문`의 처마 밑에서 나뭇꾼과 스님이 `모르겠어. 아무래도 모르겠어` 라며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잠시 비를 피하러 그곳에 들른 한 남자가 그 소리를 듣고 궁금해 한다. 이들은 이 남자를 상대로 최근에 그 마을에 있었던 기묘한 사건을 들려준다.
사건이 벌어진 배경은 녹음이 우거진 숲속. 사무라이 타케히로(모리 마사유키)가 말을 타고 자신의 아내 마사코(교 마치꼬)와 함께 오전의 숲속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늘 속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 타조마루(미후네 도시로)는 슬쩍 마사코의 예쁜 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속임수를 써서 타케히로를 포박하고, 타조마루는 마사코를 겁탈한다. 오후에 그 숲속에 들어선 나뭇꾼은 사무라이 타케히로의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곧 타조마루는 체포되고, 행방이 묘연했던 마사코도 불려와 관청에서 심문이 벌어진다.
문제는 겉보기에는 명백한 듯한 이 사건이 당사자들의 진술을 통해 다양한 진실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즉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먼저 산적 타조마루는 자신이 속임수를 썼고, 마사코를 겁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무라이와는 정당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고 떠벌린다. 하지만 마사코의 진술은 그의 것과 다르다. 자신이 겁탈당한 후, 남편을 보니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초리였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을 경멸하는 눈초리에 제정신이 나간 그녀는 혼란 속에서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무당의 힘을 빌어 강신한 죽은 사무라이 타케히로는 또다른 진술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지만, 오히려 산적 타조마루가 자신을 옹호해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결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엇갈리는 진술 속에는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담겨있다. 좀처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이때, 실은 그 현장을 목격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뭇꾼이다. 그는 마사코가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서 결투를 붙여놓고 도망쳤고, 남은 두 남자는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개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위 영화에서 사무라이 타케히로가 죽은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에 누가, 어떻게, 왜 라는 질문이 주어진다. 이에 대한 등장인물 4명의 진술은 모두 다르다. 각각의 이해관계에 기반해 유리한 진술을 할 뿐이다. 나무꾼만이 타케히로의 죽음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다.(실제 영화에서는 다르다.)
타케히로, 마사코, 타조마루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기반한 지극히 주관적인 진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은폐나 왜곡 심지어 거짓마저 섞여 있을 수 있다. 이에반해 나무꾼의 진술이 가장 객관적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타당하다. 자신의 생각을 최대한 배재하여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하지만 나무꾼의 주관이 완전히 배재되었다고 할 수도 없다. 즉 하나의 사실에 대한 수많은 이해와 설명이 가능하고 그것은 주관이 개입된다.
나무꾼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가정해보자. 마사코가 타케히로를 죽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진실은 될 수 있다. 마사코의 부추김이 없었다면 결투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악명높은 산적 타조마루를 잡아들이지 못한 관청이 타케히로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것이다. 이처럼 진실은 사실 이면에 숨겨져 있어서 사실과 사실과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드러난다. 즉 사실에 누군가의 주관이 개입되어 어떠한 가치가 주어지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사실과 진실이 일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존재한다.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진실의 유무는 하나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전혀 다르게 할 수 있다. 옳은것과 그른것을 구분하는데 사실 그 자체보다 내면에 숨겨진 진실이 더 유효하다. 역사는 사실 그 자체를 옮겨놓는 것보다 진실을 추구함으로서 의의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