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놀자

relative/Philosophy | 2009. 8. 24. 16:12 | kathe
이창후 지음.

'존재의 불안'이라는 말을 처음 듣고 나름 진지하게 생각을 해보았다. 존재? 내가 불안하다? 내가 없는 것? 있는데 흐릿한 것?... 안타깝지만 이런 종류의 사고는 맨 땅에 삽질하는 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각하라는 걸까? 저자의 대답은 철학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철학적 사고란 '전제에 대한 비판이라는 형식의 반성적인 사고이고, 더불어서 체계화된 생각'이다.

즉 '존재의 불안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이 말은 올바른 뜻을 가질 수 있는가?' 등의 의문을 가지는 것이 올바른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즉 전제에 대한 비판!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철학적 사고를 해서 득될게 뭐가 있나?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존재에 대해서 불안해 하기보단 나가서 운동을 해서 몸이나 튼튼하게 하는게 훨씬 나은게 아닌가?...

당연하게도 철학적 사고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래의 질문을 생각 해보자.

"당신은 이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까?"

'예'라고 하면 어떻고 '아니오'라면 어떤가...두가지 대답을 하면 나는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여기서 써먹어야 할게 철학적 사고다. 위 질문은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나온것이다. 그러므로 질문자의 전제가 잘못됬음을 지적하면 된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짓지 마시오!"

이처럼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이고 중요한 문제가 될 때도 있다.

한가지더 이런건 어떨까.

"성냥개비 6개로 정삼각형 4개를 만들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에도 나오는 수수께끼다. 처음 보고 바로 답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이런걸 쉽게 푸는 사람은 철학의 대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문제가 어려운 이유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전제에 있다. '평면 위의 정삼각형' 흔히 고정관념이라고 불리는 전제!

전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는 문제를 풀때 좀 더 다른 방식으로 푸는 열쇠다.

철학에 있어서 전제에 대한 비판은 끝이 없다. 하나의 전제를 비판하고 또 비판하고 또 비판한다. 이런 식의 방법은 말장난으로 빠질 가능성이 충분히 아니 넘치게 있다. 앨런 소칼의 <지적사기>란 책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신봉자들이 어떻게 말장난하며 놀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말장난을 구별할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그 대답은 '체계화된 생각'에 있다. 체계화는 '여러가지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앞뒤가 맞는 것'을 말한다.

<시크릿>과 같은 책에서는 긍정적 사고를 하면 바라는게 이루어 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도 긍정적 사고의 힘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솝우화>의 한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할게 많아진다. 독수리가 멋지게 두 발로 양을 낚아채는 것을 본 까마귀가 자기도 독수리 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따라하다가 힘이 딸려서 양털에 꼬여 잡혀버린다는 부분이 있다. 자기 분수를 잘 알라는 교훈을 남겨주는 이야기다.

이 두가지 생각은 어느 것을 먼저 듣든 옳다고 수긍이 갈만한 것들이다. 문제는 두 생각이 양립 불가능 한데 어떻게 둘 다 옳을 수가 있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필요한게 체계화된 생각이다. 체계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생각해야 한다. 전체적인 생각의 방향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고, 세부적인 생각을 정밀하게 수립해 나가야만 한다.

즉 전제에 대한 비판을 통해 나온 생각이 현실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과 체계화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철학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 철학은 현실과 손을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